진실과 거짓사이 : 루벤스의 simon & pero ( Roman Char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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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그림과 글은 푸에르토리코의 국립 미술관 입구에 걸린 명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널리 알려져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실을 알고 보면 또 다른 왜곡이 있다고 합니다.
(관련 그림이 많지만 용량이 너무 커져서 일부 중복되는 내용은 줄였습니다...양해를!!!)
(퍼온 글) # 장면 2. 기가 막히지만 진실은..
처음 필자가 위의 사진과 글을 보고 "어.. 아닌데..!" 라면서 놀란 후 인터넷 검색을 해 본 결과, 이미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던 듯하다. 때문에 "원래 진실은.."이란 부분을 필자가 좀 더 자세히 재구성 해보면 사실은 이렇다.
B.C 3세기에 살았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로마황제 발레리 막시무스와는 다른 사람임)는 많은 저작을 남기는데 그중 현재까지 약 7권의 책이 전해진다. 그 중의 한 권에는 로마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책에는 " 죄를 지은 노인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이때 죄수를 면회한 그의 딸이 마침 아이를 낳아 젖이 흐르던 상태에서 피골이 말라가는 아버지를 보고 자신의 젖을 아버지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죄수를 석방 한 일이 있다. 즉 죄는 용서 할 수 없더라도 자식의 지극한 정성이 아버지를 살린 것이다." 라는 교훈적 이야기를 담고있다.
참고 : 막시무스의 라틴어 원문 소개 사이트 http://www.thelatinlibrary.com/valmax.html
아울러 이 그림은 아래의 원문의 설명대로,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간수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며 16-18세기 화가들은 이 장면을 주제로 회화와 조각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다. 때문에 이 그림은 하등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이야기와는 무관하며, 이 그림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도 암스텔담의 "Rijksmuseum"이며, 이 그림의 제목은 원 제목이 Roman Charity(=로마식 慈愛)이고 부제로 simon & pero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화가 루벤스의 그림이다.
Of the examples of 'filial piety' in the literature of antiquity, that of Cimon and Pero was one of the ones that appealed most to artists of the 16th to 18th centuries in Italy and the Netherlands. Valerius Maximus tells of a certain Cimon, an aged man, who was in prison awaiting execution and who was therefore given no food. The jailer allowed Cimon's daughter Pero to visit him. She nourished him by giving him her breast. The scene is a prison cell; the white-haired prisoner, manacled, reclines in the lap of a young woman who is suckling him. A jailer peers through a barred window.
부조 : 작자 미상 - Roman Charity
다시 말해 인터넷상의 누군가의 과장과 그럴듯한 설명이 마치 눈덩어리처럼 커지면서, 부풀어 올라 거짓이 진실을 구축하는 현상을 불러 온 것이다. ( 필자가 네이버상에서 검색 해본 결과 그나마 이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답들도 다수 발견되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 이야기가 상당한 감동을 주면서 돌아다닌 듯 싶고 이 가공의 이야기의 출처는 모 진보적인 정치 네트워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필자가 그것을 밝힐 능력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어쨌거나 말이 나온 김에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작품은 ..
# 장면 3. simon & pero 를 주제로 한 작품들..
역시 같은 작가 루벤스가 그린 각기 다른 " Roman Charity"들이다.
" 그림의 소스가 있는 "CGFA" site 에서는 이렇게 해석을 달고 있다. - When the aged Cimon was forced to starve in prison before his execution, his devoted daughter Pero secretly visited her father to nourish him at her own breast. in his Factorvm et Dictorvm Memorabilivm Liber, the ancient Roman historian Valerius Maximus, Pero"s selfless devotion was presented as the highest example of honoring one"s parent. This subject has been pictured by others, such as
네오클레시즘을 구현한 프랑스 미술가 GREUZE, Jean-Baptiste의 "Cimon and Pero"이다.
이 그림 역시 창과 감옥, 노인과 딸을 그렸지만 딸의 얼굴에는 제한된 시간에 급히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려는 급박한 심정이 표현되어 있고 노인은 굶은 자답게 (루벤스의 근육질 노인은 도저히 굶어 죽어가는 죄수로 보이지 않는다) 몸이 메말라 있으며 그림 전반적으로 다소간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Pasinelli의 "Caritas Romana" 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 역시 초조한 기색의 여인과 오로지 살고 보자는 노인의 삶에의 욕구 그리고 창살로 몰래 그 장면을 훔쳐보는 간수의 양가감정등이 잘 나타나 있다.
몇 년 전 경매에서 스케치로는 상당한 고가를 기록해 화제가 되었던 무릴료( Murillo)의 "Caritas Romana"이다. 이 그림은 스케치로 남았지만, 완성햇을 경우 가장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작자 미상의 이탈리아 18세기 화가의 그림이다. 제목은 역시 " Cimon and Pero" 인데. 아버지의 삶에의 갈망과 자비로운 딸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 걸작이다.
Johann Zoffany 의 Caritas Roman 란 그림인데. 리얼리티는 살아있으나 전체적인 구도와 색채가 조악한 약점이 있다.
# 장면4. 이렇게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현실은 곧..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Johannes Phokela"(1966~)가 그린 작품이다.
이 화가는 기존의 대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는 작품을 많아 남겼는데 특히 루벤스, 브뤼겔등의 작품을 재해석한 그림들이 인정을 받고 있다. 기회를 봐서 이 면에서 소개 할 화가인데 이 화가는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性) 혹은 상황에 대한 감춰진 이미지를 포착하여 극적인 변환을 이룩한다, 이 화가의 작품의 의도는 결국 루벤스의 머리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본능을 그리고 싶었던 화가들의 선택은 신화나 전설 뿐이었다, 여체를 표현하고 싶었던 화가들의 욕구는 신화를 묘사하는 것으로서 대신되었고, 그중에서도 루벤스처럼 "여체" 뿐 아니라 "성적" 장면들 혹은 "희롱"을 담고 싶었던 화가들에게 이 이야기는 매력적인 주제였을 것이다. 즉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성"을 대리배설하고 있는 것이다. "Johannes Phokela"는 이런 이중적 상황을 포착하고 조롱하는 그림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우리들은 또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정치적 메시지를 위해, 암스텔담에 걸린 멀쩡한 루벤스의 그림을 푸에르토리코의 독립투사의 이야기로 교묘하게 조작해서 사실마져 조작 해 버릴 수 있는 거짓의 힘. 조작된 이미지에 흥분하고 조롱당한 사람들 그리고 원본들.. 그러나 그 원본조차 그리 당당하게 지켜줘야 할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상황에서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이미지와 원본 사이에서) 정작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이란 아래 글은 몇년전 미술관련 카페 여러 곳에 올랐던 것으로 그림은 맨 위의 "노인과 여인(1)"이 소개 되였었는데 그 외 비슷한 그림과 사진이 발견되어 올려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Rijksmuseum에 있는 루벤스(Rubens)의 작품
노인과 여인(2) 루벤스의 그림
노인과 여인(3) 작자 모름
노인과 여인(4) 작자 모름
또 다른 의견... [노인과 여인] ========
2001년도 즈음에 푸에르토리코 국립 미술관의 현관에 걸려 있다는 "노인과 여인"이라는 제목의 그림에 대한 감동적인 해설이 유행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듯, 우리의 일상에서도 교만과 아집, 편견을 버리고 본질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국립 미술관이 어떤 곳인지 안다면 "국립" 미술관이란 표현에 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중남미의 푸에르토리코에서 그려진 그림이 현대적이기는커녕 왜 저렇게 르네상스 풍인가?
진상은 이렇다. 감옥에 갇혀 굶어죽게 된 아버지를 딸이 자기 젖을 먹여서 살려 내었다는 이야기는 실화이다. 문제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현대의 푸에르토리코가 아니라 고대 로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서기 30년 경,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가 쓴 Facta et dicta memorabilia 에 실려 있는 얘기로, 아버지의 이름은 Cimon, 아버지에게 젖을 먹인 딸의 이름은 Pero라고 하는데, 딸의 이 숭고한 행동에 감동한 당국은 결국 아버지를 석방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을 Caritas Romana 라고 부르는데, 고대 로마에서는 벽화로도 많이 그려질 정도로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이 주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가(뭔들 자취를 안 감추었으랴만)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이 노인과 젊은 여자의 부자연스러운 애정행각을 그린 3류 포르노 작품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관심"에서 보듯, 이런 그림이 어느 정도의 에로틱한 면을
포함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이 그림을 보고서 에로틱한 상상을 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오히려 Caritas Romana를 보고서,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투사라는 식의 황당한, 이념 과잉의 왜곡된 해설이야 말로 더 큰 잘못일 것이다. "본질을 알면 시각이 달라진다"라는 말은 "푸에르토리코의 국립 미술관" 운운하는 엉터리 해설에 되돌려 주어야 할 말이 아닐까?
참고 문헌:
The Female Breast as a Source of Charity: Artistic Depictions of Caritas Romana
그리고 문제의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Rijksmuseum에 있는 Rubens의 작품이다.
도대체 어디서 "푸에르토리코 국립 미술관"이니 "푸에르토리코의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이니 하는 말이 나온 건지...
베트남에서 본 비슷한 그림
이건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전시된 루벤스의 '로만 채러티'
Pieter Pauwel RUBENS Roman Charity 1612년 유화작품
(The Hermitage, St. Peter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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